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앨라배마 대학교 흑인 등록 거부 사건 (문단 편집) == 내용 == 그렇게 또다시 단 한 명의 흑인 학생도 없이 시간이 흐르다가 1963년 흑인 학생 비비언 멀론과 제임스 후드가 앨라배마 대학교에 등록을 신청했다. 그들의 등록 소식은 미리 알려져 있었고 흑인에 대해 특히 배타적이었던 앨라배마에서 일어날 예정이었기에 백악관에선 두 학생을 위해 당시 미 법무차관 니콜라스 캐천바크(Nicholas Katzenbach)를 파견했다.[* 참고로 당시 법무장관은 케네디의 동생 [[로버트 F. 케네디]]였다.] 두 학생은 등록 서류와 함께 학교의 허가를 위해 앨라배마 대학교의 강당에 도착했는데 미리 소식을 들었던 앨라배마 주지사 [[조지 월리스]][* 주지사 취임 연설에서 "인종분리는 영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진짜 인종주의자라기보다는 정치 초기엔 온건한 입장이었으나 낙선한 뒤 인종주의자인 척하고 다닌 것에 가깝다. 인종차별 분위기가 만연한 앨라배마 지역선거에선 인종분리를 외치고 전국 단위인 대통령선거에 출마할 때는 자기는 항상 인종 문제에 온건파였다고 외치는 등 여론에 편승해서 자신의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서 수시로 말을 바꾸는 인물이었다. 심지어 정치인생 말기에는 흑인들의 정치적인 세력화가 상당히 진행된 것을 감지하고는 앨라마바 주지사 선거에서 흑인들을 과감하게 고위직에 임명해서 적극적인 인종차별 철폐 정책을 펼치게 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워서 당선되고 실제로 실천했다. 이렇게 수십년 동안 인종차별과 인종차별 반대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면서 정치생명을 이어간 인물이다.]가 건물의 문앞을 연단과 앨라배마 주경찰과 함께 막아서 진입이 거부되었다. 이는 흑인 학생의 등록을 막고 아울러 불러모은 기자들 앞에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정치적인 행동이었다. 캐천바크는 월리스에게 물러서라고 했지만 월리스는 무시하고 계속 버텼다. 캐천바크는 바로 백악관에 이를 보고하고 (기다렸다는 듯이) 케네디는 [[대통령령 #s-4|행정명령]] 11111호를 발동하였다. >Providing Assistance for the Removal of Obstructions of Justice and Suppression of Unlawful Combinations within the State of Alabama. >----- >앨라배마 주의 정의에 대한 방해물을 제거하고 불법 조직을 제압할 것을 지원함. 이에 따라 앨라배마의 [[주방위군]]은 연방화되어 주지사에게서 [[통수권]]을 빼앗았고[* [[리틀록 사건]] 때도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아칸소 주방위군을 연방화한 적이 있었다.] 몇 시간 후 주방위군 사령관 헨리 그레이엄(Henry Graham)이 앨라배마 대학교에 도착하였다. 그는 주지사에게 미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입구로부터 물러설 것을 요청하였고 결국 주지사는 길을 터주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